티스토리 뷰
상추 씨앗을 심고 기다리던 새싹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새싹은 씨앗 껍질을 머리에 쓴 채 좀처럼 떡잎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에는 제가 보기에는 빛이 들어오는 쪽과 반대 방향으로 줄기가 크게 휘어 있었습니다.
식물은 빛을 향해 자란다고 알고 있었는데 왜 반대로 휘었을까?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쓰러질까 걱정돼 흙을 북돋아주려고 다시 나가보니 상추가 아무 도움 없이 다시 위쪽으로 몸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씨앗 껍질을 쓰고 나온 작은 상추 하나를 관찰하다가 씨앗 껍질이 떨어지는 과정부터 굴광성과 굴중성까지 알아보게 됐습니다.
상추는 발아했는데 왜 씨앗 껍질을 며칠 동안 벗지 못했을까?
6월 29일, 베란다 화분에 상추 씨앗을 파종했습니다.
그리고 7월 4일, 기다리던 상추 하나가 드디어 흙 위로 올라왔습니다. 파종하고 5일째였습니다.
발아한 것은 반가웠지만 제가 생각했던 새싹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파릇파릇한 떡잎 두 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씨앗 껍질을 머리에 그대로 쓴 채 올라왔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정도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껍질이 떨어지고 떡잎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껍질은 그대로였습니다. 7월 7일이 되었는데도 상추는 여전히 씨앗 껍질을 머리에 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새싹이 씨앗 껍질을 머리에 쓴 것처럼 올라오는 모습을 영어권 원예에서는 흔히 ‘헬멧 헤드(helmet head)’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씨앗이 발아할 때 어린 줄기와 떡잎이 흙을 뚫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씨앗 껍질이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껍질이 떡잎에 붙은 상태로 흙 밖까지 함께 올라오기도 합니다. 껍질이 충분히 불지 않아 떡잎에 붙어 있거나 발아 과정과 파종 깊이 등 여러 조건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때 씨앗 껍질이 계속 붙어 있다고 해서 급하게 손으로 잡아당기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껍질 안에는 아직 아주 연한 떡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억지로 떼다가 떡잎까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7월 7일 분무기로 물을 조심스럽게 뿌려 씨앗 껍질을 촉촉하게 만들어주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씨앗 껍질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일이 생겼습니다.
오전까지만 해도 위를 향하고 있던 상추 줄기가 어느 순간 한쪽으로 크게 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빛이 들어오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씨앗 껍질을 왜 못 벗는지가 궁금했던 상추가 이번에는 ‘식물은 정말 빛을 향해 자라는 것이 맞나?’라는 새로운 궁금증을 만들어냈습니다.
굴광성이란 무엇일까? 상추는 왜 빛을 향해 줄기를 굽혀 자랄까?
식물이 빛이 오는 방향에 반응해 성장 방향을 바꾸는 현상을 굴광성(phototropism)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다 보면 창가 쪽으로 줄기가 기울어 자라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화분의 방향을 돌려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 자라는 부분이 다시 창문 쪽을 향하기도 합니다. 이런 줄기의 반응이 대표적인 굴광성입니다.
많은 식물의 어린 줄기는 빛이 있는 방향을 향해 자라는 양의 굴광성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눈도 없는데 어떻게 빛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알고 몸을 그쪽으로 움직일까요?
알아보니 식물에는 빛을 감지하는 여러 광수용체가 있고, 줄기의 굴광성에는 특히 청색광을 감지하는 포토트로핀(phototropin)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쪽 방향에서 빛이 들어오면 식물 내부에서 그 차이를 감지하고 여러 신호 전달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 호르몬인 옥신(auxin)의 분포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줄기가 빛 쪽으로 휘는 방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식물이 빛 쪽으로 가려면 당연히 빛을 받는 쪽이 더 많이 자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린 줄기에서는 반대로 빛을 덜 받는 쪽에서 세포의 신장이 더 촉진됩니다. 한쪽 세포가 반대쪽보다 더 길어지면서 줄기 전체가 결과적으로 빛이 오는 방향을 향해 휘게 됩니다.
빛이 줄기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성장 속도가 달라져 줄기가 휘어지는 셈입니다.
이 내용을 알고 다시 제가 찍은 상추 사진을 보니 오히려 이상한 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상추가 빛이 들어오는 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 상추는 왜 굴광성과 반대로 움직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란다의 벽이나 창문에서 반사된 빛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했고, 그날 물을 많이 뿌렸기 때문에 어린 줄기가 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사진 한 장만으로 그 원인을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식물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해서 그 모습 자체가 반드시 굴광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굴광성은 빛의 방향에 반응해 식물의 성장 방향이 달라지는 현상입니다. 반면 어린 상추처럼 줄기가 아직 가늘고 씨앗 껍질까지 달려 있는 상태에서는 자체 무게나 물방울, 줄기의 지지력 같은 물리적인 조건 때문에 일시적으로 한쪽으로 기울 수도 있습니다.
굴광성을 좀 더 분명하게 확인하려면 빛이 한 방향에서 들어오도록 조건을 만들고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줄기의 방향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는 편이 좋습니다. 화분의 방향을 돌린 뒤 새로 자라는 부분이 다시 광원 쪽으로 휘는지 관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 본 상추를 가지고 ‘빛 반대 방향으로 굴광성을 보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오전까지 서 있던 상추가 어느 순간 한쪽으로 크게 휘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상추를 다시 확인하면서 굴광성 외에 또 하나의 식물 반응을 알게 됐습니다.
빛 반대로 휘었던 상추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굴광성과 굴중성은 어떻게 다를까?
한쪽으로 크게 휘어진 상추를 보고 줄기가 너무 약한 것이 아닌가 걱정됐습니다.
그날 물도 많이 뿌렸던 터라 어린 줄기가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줄기 주변에 흙을 조금 북돋아 지지해 주려고 다시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흙을 만지기도 전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아까 한쪽으로 크게 휘어 있던 상추가 다시 위쪽으로 몸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굴광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식물이 방향을 바꾸는 원리를 조금 더 찾아보면서 굴중성(gravitropism)이라는 또 다른 반응을 알게 됐습니다.
굴광성이 빛의 방향에 대한 식물의 성장 반응이라면, 굴중성은 중력의 방향에 대한 성장 반응입니다.
일반적으로 식물의 뿌리는 중력이 작용하는 아래 방향으로 자라는 양의 굴중성을 보이고, 줄기는 중력과 반대인 위쪽으로 자라는 음의 굴중성을 보입니다. 씨앗이 흙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놓여 있어도 뿌리는 아래쪽으로 향하고 어린 줄기는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는 것도 이런 반응과 관련이 있습니다.
식물이 중력을 감지하는 과정은 빛을 감지하는 굴광성과 같지 않습니다. 중력 감지에는 특정 세포 안에서 중력 방향으로 위치가 변하는 녹말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신호에 따라 옥신의 분포가 달라지면서 뿌리와 줄기의 성장 방향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옥신은 굴광성과 굴중성 모두에 관여하지만, 뿌리와 줄기는 옥신에 대한 반응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단순히 ‘옥신이 한쪽에 많아지면 그쪽이 더 자란다’고 모든 경우를 똑같이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상추가 한쪽으로 휘었다가 다시 위로 일어난 것은 굴중성 때문이었을까요?
그것도 이번 관찰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상추가 자라던 베란다에는 한쪽에서 들어오는 빛이 있었기 때문에 굴광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었고, 동시에 중력은 계속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줄기가 워낙 어린 상태였기 때문에 씨앗 껍질의 무게나 줄기의 지지력 같은 물리적인 요인도 함께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추 한 포기의 움직임을 ‘굴광성 때문이다’ 또는 ‘굴중성 때문이다’라고 하나로 결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모두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식물의 움직임을 구분해서 보게 된 것이 이번 관찰에서 얻은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굴광성은 빛의 방향에 대한 성장 반응, 굴중성은 중력 방향에 대한 성장 반응이었습니다. 실제로 베란다에서 자라는 식물은 둘 중 하나의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라 빛과 중력을 비롯한 여러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며 자랍니다.
처음에는 씨앗 껍질 하나를 벗지 못하는 작은 상추가 걱정돼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한쪽으로 휘어진 모습을 보고 굴광성을 찾아봤고, 다시 스스로 몸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굴중성까지 알게 됐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추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네’ 하고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짧은 움직임 덕분에 식물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 주변의 빛과 중력에 반응하면서 성장 방향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히 배웠습니다.
식물의 한순간만 보고 원인을 바로 결정하기보다 전과 후의 모습을 함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 거실농부의 기록
🌱 6월 29일 파종한 상추는 7월 4일 발아했고, 발아 후에도 며칠 동안 씨앗 껍질을 떡잎에 달고 있었습니다.
🌱 굴광성은 식물이 빛의 방향에 반응해 성장 방향을 바꾸는 현상이며, 어린 줄기에서는 빛을 덜 받은 쪽의 세포가 더 길게 자라면서 결과적으로 줄기가 빛 쪽으로 휘게 됩니다.
🌱 한쪽으로 휘었던 상추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굴광성뿐 아니라 중력에 반응하는 굴중성도 알게 됐습니다.
🌱 이번 상추가 휘었다 다시 일어난 정확한 원인을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식물의 한 장면보다 변화가 일어나기 전과 후를 함께 관찰해보려고 합니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식물키우기
- 수경재배초보
- 수경재배
- 거실농부실험
- 수박키우기
- 깻잎수경재배
- 거실농부
- 홈파밍
- 이포일상
- 청경채수경재배
- 거실농부지식
- 집에서수경재배
- 방울토마토수경재배
- 수박수경재배
- 수박발아
- 수경재배기
- 굴광성
- 케일수경재배
- 깻잎키우기
- 페퍼민트수경재배
- 아이와함께하는식물키우기
- 방울토마토웃자람
- 굴중성
- 베란다에서수박키우기
- 수경재배이식
- 거실농부이야기
- 웃자람
- 소확행
- 방울토마토키우기
- 말레이시아생활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
| 6 | 7 | 8 | 9 | 10 | 11 | 12 |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