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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 줄기가 유난히 길어진 아이들이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튼튼하게 위로 자란 것이 아니라 빛을 찾아 길게 뻗은 듯 줄기가 가늘고 길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자기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흙 위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했습니다.
‘이렇게 누워버린 고수는 다시 못 자라는 걸까?’
그런데 며칠 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니 재미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미 길게 자란 줄기는 여전히 흙 위에 누워 있는데, 그 줄기의 끝부분, 즉 생장점이 있는 쪽부터 방향을 틀어 다시 위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누워 있던 줄기 전체가 벌떡 일어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긴 줄기는 그대로 누워 있고, 그 이후에 새로 자란 부분이 위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왜 고수는 쓰러지고도 다시 위를 향해 자라는 걸까요?
얼마 전 상추가 한쪽으로 휘었다 다시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알게 된 굴광성과 굴중성이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고수에서 그 모습을 훨씬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고수가 웃자라 쓰러졌는데 생장점부터 다시 위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처음 이 고수들을 키울 때부터 줄기가 조금 길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고수는 원래 어느 정도 줄기가 길게 올라오는 식물이지만, 제가 키우는 고수 중 일부는 잎의 크기에 비해 줄기가 가늘고 길었습니다. 서로 가까이 자라고 있었고 베란다에서 받는 빛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웃자람이 어느 정도 생긴 것으로 보였습니다.
줄기가 길어질수록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위쪽에 잎은 계속 만들어지는데 그것을 받쳐주는 줄기는 가늘고 길다 보니 점점 자기 무게를 버티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결국 몇몇 고수는 줄기가 휘면서 흙 위로 완전히 드러눕다시피 했습니다.
처음에는 쓰러진 줄기를 다시 세워줘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흙을 더 덮어줄까, 지지대를 만들어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줄기의 아랫부분은 분명히 옆으로 누워 있는데 위쪽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워 있는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 줄기의 방향이 달라졌고, 생장점과 새잎이 있는 끝부분은 다시 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쓰러졌던 고수가 다시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보면 조금 다릅니다.
이미 만들어진 긴 줄기가 다시 꼿꼿하게 펴진 것이 아니라, 쓰러진 이후 새롭게 자라는 부분이 방향을 바꾼 것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이 차이가 꽤 중요했습니다.
식물은 이미 길게 만들어진 줄기 전체를 들어 올려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성장할 수 있는 어린 조직의 성장 방향을 조절하면서 새로운 자세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 고수는 조금 재미있는 모양이 됐습니다.
아래쪽 줄기는 흙 위를 기어가듯 누워 있고, 중간에서 줄기가 휘어진 다음 위쪽에는 다시 비교적 곧게 선 잎과 생장점이 있습니다.
마치 고수가 스스로 ‘여기까지는 쓰러졌지만 이제부터 다시 위로 가야겠다’고 방향을 바꾼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고수는 어떻게 위쪽이 어디인지 알고 다시 방향을 바꾼 걸까요?
쓰러진 고수가 다시 위로 자라는 이유, 굴중성과 굴광성이 함께 작용했을까?
식물이 중력의 방향을 감지해 성장 방향을 조절하는 현상을 **굴중성(gravitropism)**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뿌리는 중력이 작용하는 아래쪽으로 자라는 양의 굴중성을 보이고, 줄기는 중력과 반대 방향인 위쪽으로 자라는 음의 굴중성을 보입니다.
씨앗을 흙 속에 어떤 방향으로 놓아도 뿌리는 아래쪽으로, 줄기는 지상 쪽으로 자랄 수 있는 것도 이런 성질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옆으로 쓰러진 고수 입장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원래 위를 향하던 줄기가 옆으로 누우면 식물이 받는 중력의 방향과 줄기의 위치 관계가 달라집니다. 식물은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성장 중인 부분의 세포 신장을 다르게 조절하면서 줄기가 다시 위쪽을 향하도록 굽어 자랄 수 있습니다.
이번 고수에서 제가 본 모습도 이와 잘 맞아 보였습니다.

사진을 보면 흙 가까이에 있는 줄기는 거의 옆으로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줄기를 따라가면 어느 순간 방향이 달라지고, 이후 만들어진 부분은 다시 위쪽을 향합니다.
이런 모습은 줄기의 음의 굴중성과 관련된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를 조심해야 했습니다.
제가 키우는 고수는 완전히 어두운 곳에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베란다에는 빛도 들어옵니다.
식물의 줄기는 중력뿐 아니라 빛의 방향에도 반응합니다.
빛이 오는 방향에 따라 성장 방향을 조절하는 현상이 바로 굴광성(phototropism)입니다. 많은 식물의 어린 줄기는 빛이 있는 쪽으로 휘어 자라는 양의 굴광성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실제 베란다에서 자라는 고수를 두고 ‘이것은 100% 굴중성 때문이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고수에게는 계속 중력이 작용하고 있었고 동시에 주변에서 빛도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결국 새로 자라는 줄기의 방향에는 굴중성과 굴광성을 비롯한 여러 환경 요인이 함께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번 사진만 놓고 보면 한 가지는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고수가 쓰러진 뒤에도 생장점 쪽의 새로운 성장이 계속됐고, 그 부분은 다시 위쪽을 향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상추를 보면서 굴광성과 굴중성이라는 말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는데, 이번에는 웃자라 쓰러진 고수가 그 현상을 눈앞에서 다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보는 식물의 반응이 제 베란다에서는 이렇게 구불구불한 고수 줄기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웃자라 쓰러진 고수는 다시 세워야 할까? 그냥 두고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고수가 처음 쓰러졌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빨리 세워줘야겠다’였습니다.
줄기가 흙 위에 누워 있으니 이대로 두면 죽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아래쪽 줄기는 너무 길고 가늘어서 혼자 다시 꼿꼿하게 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지켜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줄기가 완전히 부러진 것도 아니었고 잎도 살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생장점에서는 계속 새잎이 나오고 있었고, 새롭게 자라는 부분은 스스로 위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누워버린 줄기를 억지로 세우기보다는 일단 그대로 두고 변화를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웃자람 자체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웃자란 줄기가 갑자기 짧고 굵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길어진 줄기는 그대로 남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새로 자라는 부분이 또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고수가 웃자라는 데에는 빛의 양과 방향뿐 아니라 파종 간격이나 주변 식물과의 경쟁 등 여러 조건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제 화분도 고수가 꽤 촘촘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에 서로 빛을 가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쓰러진 줄기를 어떻게 세울까?’보다 ‘앞으로 새로 자라는 부분을 어떻게 튼튼하게 키울까?’를 생각하는 편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줄기가 너무 불안정한 개체라면 흙을 조금 북돋아 줄기 아랫부분을 지지해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고수 줄기를 깊숙이 묻어 새로운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을 당연한 해결책처럼 생각하기보다는, 줄기가 상하지 않도록 필요한 만큼만 지지해 주는 쪽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당장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발견하자마자 줄기를 모두 세워 묶어버렸다면 고수가 쓰러진 이후 새로 자라는 부분 스스로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이렇게 분명하게 관찰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식물을 키우면서 자꾸 무언가를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물이 부족해 보이면 물을 주고 싶고, 기울면 세워주고 싶고, 잎이 이상하면 바로 무언가를 뿌려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손대기 전에 며칠 지켜보는 것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웃자라 쓰러진 고수가 그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습니다.
👩🏻🌾 거실농부의 기록
🌱 빛이 부족해 길게 웃자란 고수가 결국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처음에는 줄기가 너무 길어져 그냥 쓰러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며칠 뒤 자세히 보니 쓰러진 줄기가 다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바닥에 누운 줄기의 생장점부터 새로 자란 부분이 위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 왜 이렇게 자라는지 궁금해 찾아보면서 식물이 빛의 방향에 반응하는 굴광성과 중력의 방향에 반응하는 굴중성을 알게 됐습니다. 실제 베란다에서는 두 반응과 주변 환경이 함께 영향을 줄 수 있어 이번 고수의 변화를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웃자라 쓰러진 고수를 보며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뒤 새로 자라는 방향을 지켜보면서 식물이 주변 환경에 맞춰 계속 성장 방향을 조절한다는 것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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