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박을 흙으로 옮긴 다음 날, 첫 꽃이 피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너무 신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수경재배 환경에서 자라던 뿌리를 흙으로 옮기면 뿌리 주변의 수분과 산소 조건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옮겨 심은 직후에는 식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노란 수박꽃 하나가 피었습니다.

처음 보는 수박꽃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수경재배기에서 시작한 작은 수박 모종이 어느새 꽃까지 피웠다는 사실에 신이 났고, 그 순간 전날까지 생각하고 있던 ‘이식 후 적응 기간’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잘 자라게 해 줘야겠다.’

식물 조명을 수박 위로 옮기고, 바람도 필요할 것 같아 선풍기까지 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수박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잎들이 폭삭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생각났습니다.

‘아차. 얘 이식한 지 얼마 안 됐지.’

이번에는 수박을 키우면서 제가 했던 실수와 그 뒤 수박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수경재배하던 수박을 흙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첫 꽃이 피었습니다

8월 13일, 수경재배기에서 키우던 수박을 흙으로 옮겼습니다.

수경재배에서 자란 뿌리와 흙에서 자라는 뿌리는 놓이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옮겨 심은 직후에는 식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옮긴 직후에는 강한 자극을 주기보다 상태를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이식 당일 수박은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습니다. 잎도 크게 처지지 않았고 줄기도 멀쩡했습니다.

수경재배에서 흙 화분으로 이식한 직후 잎이 펼쳐져 있는 수박 모종
수경재배에서 흙으로 옮긴 직후의 수박

그래서였을까요. 저도 모르게 마음을 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8월 14일,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수박에 노란 꽃 하나가 피었습니다.

흙으로 이식한 다음 날 줄기 사이에서 피어난 노란 수박꽃
흙으로 옮긴 다음 날 처음 피어난 수박꽃

꽃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가운데에 수술이 보였습니다. 첫 꽃은 수꽃이었습니다. 열매가 달리는 암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키우던 수박에서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수경재배기에서 작은 모종으로 키우던 수박이 흙으로 옮긴 바로 다음 날 꽃을 피우다니, 저는 수박이 새로운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문제였습니다.

‘꽃도 피었으니 이제 제대로 키워봐야겠다.’

빛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사용하던 식물 조명을 수박 위로 옮겼습니다. 베란다에는 바람이 거의 없으니 선풍기도 틀어주었습니다.

평소라면 이상할 것 없는 관리였습니다. 빛도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하고 공기의 흐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이 수박은 불과 하루 전에 수경재배기에서 흙으로 옮겨온 식물이었습니다.

첫 꽃을 보고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제가 알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그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꽃이 반가워 잊고 있었습니다, 이식한 수박은 아직 새로운 뿌리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8월 15일 아침 수박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잎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한두 장이 살짝 처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제법 힘 있게 펼쳐져 있던 커다란 잎들이 아래를 향하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수박이 갑자기 힘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흙으로 이식한 뒤 식물 조명과 선풍기를 사용한 다음 날 잎이 심하게 처진 수박
이식 이틀 뒤 갑자기 잎이 축 처진 수박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정말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왜 그랬지? 얘 아직 뿌리 적응 중이잖아.’

이식 후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분명 알고 있었고, 이식하던 날에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꽃 하나가 피었다고 너무 신이 났던 것입니다.

수경재배 환경에 있던 뿌리를 흙으로 옮기면 식물은 달라진 수분과 산소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때 뿌리가 아직 충분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잎에서 빠져나가는 수분이 많아지면 식물의 수분 균형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식물 조명을 더 가까이 옮기고 선풍기까지 틀어주었습니다.

조명과 바람이 항상 식물에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식물이 안정적으로 자라는 환경에서는 적절한 빛과 공기 흐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식 직후처럼 뿌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시기에는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환경 변화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바람은 잎 주변의 습한 공기를 밀어내 증산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뿌리의 수분 흡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면 잎이 더 쉽게 처질 수 있습니다.

사진만으로 당시 시듦의 원인을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경재배에서 흙으로 옮긴 것 자체가 큰 변화였고, 여기에 조명과 선풍기까지 거의 동시에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가 너무 많은 변화를 한꺼번에 줬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식물 조명을 치웠습니다. 선풍기도 더 이상 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잎과 식물 주변으로 물을 가볍게 분사해 주었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무언가를 더 해주는 것이 아니라, 수박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삭 시들었던 수박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가장 오래된 잎들은 말라갔습니다

다음 날인 8월 16일, 수박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전날처럼 모든 잎이 힘없이 늘어진 모습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었습니다. 당장 완전히 회복됐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더 심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식 스트레스로 시든 뒤 잎이 조금씩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 수박 모종
조명과 선풍기를 치운 뒤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 수박

8월 17일에는 잎이 다시 펼쳐지는 모습이 조금 더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수박 전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떡잎과 어미줄기 아래쪽에서 가장 먼저 나왔던 1번, 2번 본잎이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잎들까지 살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잎과 생장점은 살아 있었고, 먼저 나온 아래쪽 잎들에서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식물은 이식이나 수분 부족 같은 스트레스를 겪으면 모든 잎을 똑같이 유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잎에서 노화가 먼저 진행되거나, 일부 영양분이 어린 조직으로 재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 아래쪽 잎이 마른 이유가 오직 그런 생리적 자원 재분배 때문이었다고 사진만 보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식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일시적인 수분 불균형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아래쪽의 오래된 잎들은 결국 말라갔지만, 위쪽의 생장점까지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식 스트레스 후 아래쪽 오래된 잎 일부가 마르고 위쪽 생장점은 살아 있는 수박
오래된 아래쪽 잎은 손상됐지만 새잎과 생장점은 살아 있던 수박

이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조금 안심했습니다.

8월 15일 잎이 한꺼번에 축 처졌을 때는 수박을 잘못 건드려 아예 죽게 만든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을 지켜보니 수박은 모든 부분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지는 않았어도 살아 있는 부분에서는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한동안 눈에 띄는 성장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새잎이 조금씩 커지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마치 수박의 시간이 잠깐 멈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며칠 동안 성장을 멈춘 것 같던 수박, 기다려보니 생장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8월 20일이 되자 수박은 처음 시들었던 날과 비교하면 제법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래쪽에는 이미 손상된 잎이 남아 있었지만 전체 잎이 축 늘어졌던 15일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흙 이식 후 시듦 증상에서 회복하며 새잎을 유지하고 있는 수박 모종
이식 후 크게 시들었다가 다시 잎에 힘이 생긴 수박

그렇다고 바로 쑥쑥 자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며칠 동안은 수박의 크기가 거의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걱정됐습니다. 겉으로 잎만 다시 일어났을 뿐 실제로는 성장을 멈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를 더 해보려고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한 번 제가 너무 빨리 개입했다가 수박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냥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8월 22일, 매일 들여다보던 수박에서 작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생장점 부근의 새잎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하루 만에 줄기가 몇 배씩 자란 것도 아니고 갑자기 새로운 덩굴이 길게 뻗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매일 보던 제 눈에는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자라고 있구나.’

그 작은 변화가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식 후 식물의 상태를 볼 때 잎이 한 번 시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결과를 너무 빨리 판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오래된 잎 일부는 회복하지 못하고 말라버릴 수 있지만 생장점과 새로운 잎이 살아 있다면 이후의 변화를 조금 더 지켜볼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식물이 같은 방식으로 회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뿌리 손상의 정도나 온도, 빛, 수분 상태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 수박에서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8월 15일에는 잎이 폭삭 시들어 제가 수박을 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명과 선풍기를 치우고 더 이상의 환경 변화를 줄인 뒤 기다려보니 조금씩 잎이 회복됐고, 오래된 잎 몇 장을 잃은 뒤에는 다시 새로운 성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빨리 잘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더 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물도 주고 싶고, 빛도 더 주고 싶고, 바람도 쐬어주고 싶습니다. 잘 자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해주게 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식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도 재배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번 수박을 키우면서 알게 됐습니다.

8월 15일에는 잎이 모두 축 처진 모습을 보며 제가 수박을 망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인 8월 22일에는 생장점에서 다시 작은 성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쪽의 오래된 잎 몇 장은 잃었지만, 수박은 다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작은 변화만으로 충분히 반가웠습니다.

👩🏻‍🌾 거실농부의 기록

🌱 수박을 흙으로 옮긴 다음 날 첫 꽃이 피었습니다. 꽃이 핀 것이 너무 반가워 이식 후에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렸습니다.

🌱 잘 자라라고 식물 조명을 옮기고 선풍기까지 틀어주었는데, 다음 날 멀쩡했던 잎이 한꺼번에 축 처졌습니다.

🌱 조명과 선풍기를 치우고 기다려보니 수박은 조금씩 회복했습니다. 떡잎과 먼저 나왔던 아래쪽 본잎은 결국 말라버렸지만 생장점은 살아 있었습니다.

🌱 며칠 동안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였던 수박에서 다시 새잎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식물을 키울 때는 무언가를 더 해주는 것만큼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수박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자 이제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미줄기는 어디에서 순지르기 해야 할까?’

다음 기록에서는 회복한 수박의 어미줄기를 직접 순지르기 하고, 어떤 아들줄기를 남길지 고민했던 과정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거실농부 실험 #08] 허니듀는 성공했는데, 수박도 같은 방법이 통할까?